역사/문화

마포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소중한 문화유산

 소중한 마포의 
 문화유산 

“우리 같이 지켜나가요.”

 
  • 사적 제399호(1997.11.11)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찾아오시는 길

    주소마포구 토정로 6 (합정동)

    1866년 2월 프랑스 군함이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응하여 서강까지 진입하자 격분한 대원군이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으로 끌고가 목을 베어 죽여 절두산 성지라 부르게 되었다. 양화나루는 잠두봉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추가로 지정된 유적이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였으며 곡식을 분배하고 군사상 중요 기능을 맡았던 곳이다.

  • 보물 제569-9호(1972.8.16)

    안중근 의사 유묵보물찾아오시는 길

    주소마포구 와우산로 94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휘호한 유물들을 보물 제569호로 일괄 지정했는데 그 소재와 소유자는 각기 다르다.
    이 가운데 제9호인 ‘오로봉위필(五老峯爲筆)’은 홍익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 보물 제745-1호(1983.5.7)

    월인석보(권1,2)찾아오시는 길

    주소마포구 백범로 35 서강대학교 도서관

    세종이 돌아가신 어머니(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세조)에게 명하여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편찬한 것이 『석보상절』이다.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그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한 것이 곧 『월인석보』로 세조 5년(1459)에 편찬했다.
    이 책은 훈민정음 반포 당시에 편찬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역 불교성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신수동 서강대학교 도서관에 권 1~2가 있다.

  • 보물 제1624호(2010.1.4)

    양사언 초서찾아오시는 길

    주소마포구 백범로 35 서강대학교 박물관

    양사언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서예가로 특히 해서와 초서에 능하여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조선 전기 4대 서가라 일컬어졌고, 특히 큰 글자를 잘 썼다. 한시 또한 천의무봉이라는 평을 받았다. ‘미인별곡(美人別曲)’, ‘남정가’가 있다.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가 지금도 애송되고 있다. 그 외에 문집으로 『봉래집』이 남아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기념물 제9호(1990.6.18)

    망원정 터찾아오시는 길

    주소동교로 8안길 23(합정동)

    효령대군의 별장으로 1424년에 건립되었다. 1425년에 세종대왕이 농사 형편을 살피러 이곳에 거동했다가 때마침 비가 내려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시므로 왕이 매우 기뻐하며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熹雨亭)’이라 하였다. 1484년에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소유로 바뀌게 되자 월산대군은 정자를 보수하고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름을 ‘망원정(望遠亭)’으로 바꾸었다.

  • 민속문화재 제17호(1977.3.17)

    용강동 정구중 가옥찾아오시는 길

    주소큰우물로2길 22(용강동)

    192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정구중씨 개인의 집으로, 좁은 집터에 전통 한옥 구조의 깊은 맛을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대지 241평, 건평 71평). 한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안채의 방 안에는 병풍, 도자기, 문갑 등 각종 근대 유물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이 가옥은 한말 용강동의 부농인 이모 씨가 무남독녀에게 주기 위해, 당시 장안에서 이름난 4대 목수 중의 하나인 안영달을 시켜 지었다고 하는데 목재는 압록강 유역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 2년 동아 담가 놓았다가 1년간 건조한 후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고종 때의 문신이며 형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지냈던 명성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인 민승호 대감의 별장이었다고도 전해온다. 현재는 민간인 소유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 민속문화재 제36호(2017.8.10)

    당인동 부군당 무신도 (唐人洞 府君堂 巫神圖)찾아오시는 길

    주소독막로12안길 25-18(당인동15-4)

    당인동 부군당의 무신도 8점은 양식과 도상, 채색방식으로 보아 한 명의 화승에 의해 20세기 초에 일괄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울·경기지역 탱화에 유행하던 레이스 모양의 꽃무늬 띠 문양이 옷깃과 소매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근대기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은 일부 탱화에 보이는 다양하면서 정련된 색감의 배치가 나타난다. 무신도로는 보기 드물게 지장시 왕탱이나 현왕탱과 같은 명부(冥府) 계통의 탱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져 있다.

  • 무형문화재 제35호(2005.1.10)

    밤섬 부군당 도당굿찾아오시는 길

    일시음력 1월 2일

    주소독막로 145

    밤섬 이주민, 지역주민 등이 부군당에 모여 부군신에게 제례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전통 대동제례이다. 약 400년 전부터 제를 지내온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첫 폭격에 밤섬 주민 53명이 죽을 정도로 피해가 컸는데 당집 주위의 13가구만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밤섬 부군당 때문이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밤섬 폭파 이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매년 정월초 이튿날 유시에 제를 올리며, 밤섬 이주민 40여 가구가 부군 할아버지에게 새해의 풍년과 복을 비는 마을 굿거리를 한다.

  • 유형문화재 제382호 (2016.4.7)

    의령남씨가전화첩찾아오시는 길

    태조 년간(1392~1398)부터 중종 년간(1506~1544), 명종 년간(1545~1567), 선조 년간(1567~1608), 영조 년간(1724~1776)에 있었던 특정 사건이나 행사에 의령남씨 출신이 관련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그림과 관련 기록을 묶어, 태조망우령가행도(太祖忘憂嶺駕幸圖),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명묘조서총대시예도(明 廟朝瑞葱臺試藝圖),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 諸宰慶壽宴圖), 영묘조구궐진작도(英廟朝舊闕進 爵圖) 등 5개의 개별 화첩으로 꾸민 것이다

  • 등록문화재 제231호 (2006.3.2)

    서울 서강동 공민왕사당찾아오시는 길

    주소창터1길 28-1(창전동)

    창전동 산2번지에 위치한 신당으로,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신당에는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 최영 장군, 그 외 왕자, 공주, 옹주의 화상이 걸려 있다. 사당 옆에 세워진 광흥당에서는 향토문화 전승교육을 한다.

  • 등록문화재 제413호(2008.10.10)

    서울 서교동 최규하 가옥찾아오시는 길

    방문서울시 홈페이지 ‘공공서비스예약’에서 신청

    주소동교로15길 10(서교동)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직접 건축하여 거주한 사저로, 청와대 외교특보 시절인 1973년부터 1976년 제12대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삼청동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그리고 12·12를 계기로 1980년 8월 16일 대통령직을 사임한 후부터 2006년 서거할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거주한 2층 가옥이다.연탄 보일러, 흰 고무신, 30여 년 된 라디오, 50여년 된 선풍기, 재활용해서 쓴 이쑤시개 등 생전에 검소했던 생활상과 유품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950년대 이후의 다양한 생활용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생활사박물관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 등록문화재 제342호 (2007.9.17)

    미몽(일명:죽음의 자장가)찾아오시는 길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영화이자 여섯 번째 발성영화로 제작 당시 영화의 문법과 기술의 진보를 확인할 수 있는 30년대 중반 서울의 풍경은 물론 당대 남한 최고의 무용가로 인정받았던 조택원의 춤사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영화다.

  • 등록문화재 제343호 (2007.9.17)

    자유만세찾아오시는 길

    최인규 감독, 전창근 각본의 1946년 한국의 흑백영화이다. 광복 후 제작된 본격적인 극영화로서, 흥행에 있어서 큰 기록을 수립한 작품이었다. 36년 간이라는 식민지 치하에서 자유를 갈구해 왔던 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편의 영화에 깊이 감동해 버렸기 때문이다. 광복기를 장식하는 가장 괄목할 만한 영화다.

  • 등록문화재 제344호 (2007.9.17)

    검사와 여선생찾아오시는 길

    김춘광(金春光)이 극본을 쓴 신파극 1948년 윤대룡 감독의 무성영화로 현존하는 유일의 무성 영화로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의 전형이다. 표현은 서투르고 투박하지만 인간의 향기가 풍겨난다. 한 여인을 통하여 희생으로 빚어내는 사랑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 등록문화재 제345호 (2007.9.17)

    마음의 고향찾아오시는 길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영화화한 작품. 한국 문예영화의 원형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문학을 원작으로 하고, 롱쇼트와 롱테이크를 중심으로 하는 미학적 특징과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인간사의 조화를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연출자의 관조적인 태도가 이야기의 비극적인 낭만성과 어우러지며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등록문화재 제246호 (2007.9.17)

    피아골찾아오시는 길

    지리산 피아골에 숨어 지내며 의미 없는 전투를 펼치는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삼은 첫 번째 영화로, 빨치산 영화들의 원형이 되었다. 그들의 삶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상영허가정지처분과 장면수정을 거친 후 개봉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개봉 당시의 수난을 넘어 반공 휴머니즘의 수작으로 평가 받은 [피아골]은 시간이 지나며 한국 리얼리즘의 계보를 잇는 한국영화사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등록문화재 제347호 (2007.9.17)

    자유부인찾아오시는 길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서 연재되고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된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오늘날까지도 제목만으로도 선정성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 멜로의 고전이다. 단순히 파격적인 내용으로 사회를 들썩이게 한 것만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 나간 편집, 연출 감각으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 등록문화재 제348호 (2007.9.17)

    시집가는 날(일명: 맹진사댁 경사)찾아오시는 길

    1942년 작가 오영진이 쓴 '맹진사댁 경사'로 잘 알려진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 원작은 1944년 처음으로 연극으로 공연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희곡 가운데 하나. 특히 영어와 불어로 번역되어 해외에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원작을 가지고 세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처음 만든 이병일 감독이 이 영화를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제8회 베를린 영화제 출품, 제6회 시드니영화제 출품작. 제4회 아시아영화제 특별희극상, 제1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미술상 수상.

  • 등록문화재 제488호 (2012.2.16)

    청춘의 십자로찾아오시는 길

    데릴사위로 7년간 뼈빠지게 일만 하다 정혼녀 집에서 쫓겨난 영복은 경성역에서 수하물 운반부로 일하다가 계순이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불한당들에 의해 그의 여동생과 계순이 농락을 당하게 되고, 영복은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에 나선다. 활극과 멜로, 신파와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가 녹아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

  • 등록문화재 제528-1호 (2012.12.24)

    국문정리찾아오시는 길

    1897년(건양 2) 간행된 이봉운(李鳳雲)의 국문에 관한 주장을 종합한 연구서.규장각도서 한지 동장, 본문 14장. 목판본. 순국문(純國 文)을 권점으로 띄어쓰기를 나타내고, 성경과 같이 홑줄로 인명, 쌍줄로 지명을 표시한 점이 특이하다. 서문·목차에 이어 국문의 내력과 자모분음·장음반절·단음반절·문법론·탁음·어토명목(語吐名目)·새언문이 차례로 서술되었다.

  • 01. 양화진나루터

    주소토정로 6(합정동) 절두산순교성지 기념관 앞 한강시민공원 연결계

    1989년에 세운 표석으로, ‘서울과 제물포 강호방면을 잇던 나루터’라는 문안이 새겨져 있다. 송파진 및 한강진과 더불어 서울의 3진 중 하나로서,나루로서의 기능 뿐 아니라 상인들이 왕래하는 상업Y지구로서 이름을 떨친 양화나루터는 양화대교 북단 인터체인지에서 당산철교 아래와 잠두봉위의 외국인묘지까지 포함하는 일대를 가리킨다.

  • 02. 광흥창터

    주소창전1길 28-1(창전동) 공민왕사당 앞

    1890년에 세운 표석으로, ‘조선시대 관원의 녹봉으로 쓰일 양곡을 저장하던 창고터’라는 문안을 통해 광흥창의 성격과 이 지역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광흥창은 경기와 삼남지방에서 바친 공미를 쌓아 두었다가 관리들의 녹봉을 주관한 곳으로,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조선 건국 초에 설치했다.

  • 03. 점검청지

    주소토정로 136-13(상수동) 제이엔씨빌딩 화단

    1995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각 지방으로부터 조운으로 운반되어 온 세공미의 수송선박을 검문하고 그 출입을 감독하는 것이 점검청(點檢廳)의 역할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수상운송 통행을 검열하던 장소로서 삼남과 황해도 지방에서 들어오는 공미를 검사하던 관청이었으며, 후에는 화물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였다.

  • 04. 무쇠막터

    주소독막로 189(신수동) 천주교신수동교회 앞 도로(버스정류소 옆)

    이 표석은 2001년에 세운 것으로, ‘정부에 무쇠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바치던 철공장이 모여있던 곳’이라는 문안을 통해 무쇠막터의 유래를 알 수 있다.일찍부터 무쇠막 또는 무쇠막터로 알려졌다. 무수막에서 수철(水鐵)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신수동의 원래 이름인 수철리도 이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다. 솥 만드는 바탕을 설치했었기 때문에 바탕거리라고도 불렀다.

  • 05. 공세청터

    주소독막로 145 봉원빗물펌프장 앞

    2001년 설치한 표석으로, ‘조선시대에 서강나루로 들어오는 선박에 대해 세금을 거두던 기관이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을 통해 공세청의 기능을 명시하였다. 서강나루는 인천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세 수송선의 집결지였기 때문에 공세청과 함께 점검청과 광흥창이 있었다. 점검청은 공물 대신 바치는 공미(貢米)를 검사하던 기관이고, 광흥창은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쌀인 봉록미를 관리하던 기관이다.

  • 06. 서강나루터

    주소창전1길

    1987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삼개마루(용호, 마호, 서호)의 하나, 삼남지방과 서해안으로부터 곡물과 어물이 들어오던 곳’이라는 문안이 쓰여 있다.

  • 07. 서강나루터

    주소신수로3길 19(현석동) 밤섬현대아파트 경비실 앞

    2003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박세채(1631~1695)는 조선후기 숙종 때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관리이다. 유학자로 소론(少論)의 대표가 되었다. 그는 사회규범으로써 예학을 일으키는 일에 전념하여 예학(禮學)의 대가라고 칭하며, 대동법의 실시를 적극 주장하였다. 그의 아호인 현석(玄石)을 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 08. 염전머릿골

    주소숭문5길 8-6(염리동) 염리치안센터 왼쪽 한국통신전산지원단 담장 앞

    1995년에 설치한 표석으로, ‘한강으로 들어온 소금배가 소금을 풀어 거래하던 염전이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덧붙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흥동의 동막역 부근에 소금 창고가 있었으며,마포나루에서 소금배가 이곳까지 들어와 소금전(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 09. 아소정터

    주소백범로 150(염리동) 서울디자인고등학교 내(정문 진입 후 오른쪽 화단)

    1995년에 세운 표석으로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별장 터'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 10. 서활인서터

    주소마포대로 247(아현동) 아현중학교 앞

    1987년에 세운 표석으로, ‘전염병자를 격리 치료하던 의료기관이 있었던 곳’이라는 문안이 새겨져 있다. 활인서는 고려의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조선 태종14년(1414)에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으로 바꿨다가 세종13년(1467) 동서활인서(東西活人署)로 개칭했다.

  • 11. 독립운동 유적지

    주소마포대로 174(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 왼쪽 화단

    이 표석은 1995년에 세웠는데, ‘1912년 일제가 경성형무소를 설치하여 항일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유적지’라는 문안을 통해 이 곳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길 수 있다. 해방 후 마포형무소로 명칭이 바뀌어 유지되어 오다가 안양에 교도소를 새로 지으면서 없어지고 지금은 서울지방법원이 있다.

  • 12. 선통물천

    주소마포대로 193(아현동) 터널 입구

    이 표석이 설치된 시기는 자세하지 않다. 아현동617번지 터널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선통물(善通物)’이라고 쓰여 있다. 옛날 마포항에 많은 물건이 들어오면 애오개쪽에서 마포 포구로 흐르는 개천을 먼저 거슬러 올라와 장안으로 반입되었다. 다시 말해 ‘선통물’이란 ‘물건이 먼저 통과하는 개천’이라는 뜻인데, 먼저 선(先) 자가 착할 선(善) 자로 바뀐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봉원천쪽으로 터널을 뚫어 물길을 돌렸다.

  • 13. 공덕리금표

    주소마포대로 109(공덕동) 롯데캐슬프레지던트 앞

    1870년에 세워졌다. 지금의 공덕동 로터리에 있다가 재개발로 전 공덕2동 주민센터 앞으로 이전 되었다. 이곳으로부터 120보 거리에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는 공덕리 별장(아소정)이 있으니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의 문안이 새겨져 있다.

  • 14.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

    주소토정로32길 13(토정동) 한강삼성아파트 단지 내 102동 앞 시계탑 화단 내

    1997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조선 중기 명현으로 성리학자였던 토정 이지함 선생이 살던 집터 부근인 마포구 토정동 삼성아파트 단지 입구에 설치되었다. 해방 직후까지 이곳에는 토정의 옛 집터로 전해지는 빈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옛고을 이름에 아래토정·윗토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예전부터 토정리로 불렸던 곳임을 알 수 있다.

  • 15. 삼개포구

    주소마포공영주차장과 마포대림1차A(토정1길 21) 단지 사잇길 한강공원진입통로 계단

    1989년에 세운 표석으로, ‘황해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던 물화 집산의 포구’라는 표석문안을 통해 마포구의 역사적·지리적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였다.

  • 16. 3·1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주소마포로 253 다보빌딩(불교방송국) 앞 화단

    1993년에 설치된 표석으로 ‘독립운동기념지’라는 문안이 새겨져 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시위군중이 오후 8시경에 이곳에 운집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 17. 담담정터

    주소마포대로4길 122(마포동) 벽산빌라 정문 옆

    2003년에 세운 표석으로, 담담정은 조선초에 안평대군이 지은 정자였으나 세조 때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별장이 되었다. 안평대군은 이 정자에 만여 권의 책을 쌓아 두고, 시회(詩會)를 베풀었다. 신숙주는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하고,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으며 네 번이나 영의정을 지냈다. 세조는 이 정자에 거둥하여 중국의 배를 구경하고 각종 화포를 쏘는 것을 구경하였다. 그 후 이 정자 터에는 마포장(麻浦莊)이 지어져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이 잠시 머물기도 했다.

  • 18. 밤섬주민생활터

    주소밤섬 내

    밤섬 내에 위치한 문화유적표석으로 1994년에 설치되었다. 표석에는 ‘조선초부터 배를 만들고 농사지으며 주민이 거주했으나 한강개발로 1968년 2월 62가구가 창전동으로 이주함’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 19. 토정터

    주소토정길32길 11(토정동)

    조선중기 저명한 역학자였던 토정 이지함의 집터이다

  • 20. 동막 큰우물터

    주소독막로266 대흥동태영아파트 후문 소공원 내

    약200년전 마을주민이 협동하여 조성한 "식용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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