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

역사 속 인물

 
  • 공민왕

공민왕은 고려 제 31대 왕으로, 그를 모신 사당이 와우산 밑의 창전동에 있다. 공민왕의 이름은 전(?), 처음 이름은 기(祺)이다.
호는 이재(怡齋)와 익당(益堂)으로 충숙왕과 명덕태후 홍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충정왕 1년(1349) 원나라 위왕의딸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하여 왕비로 삼았다.

대외적으로는 적극적인 배원정책을 펴몽고의 잔재를 없애고, 북진정책을 실시하였다. 대내적으로는 고려왕실을 위약하게 한 친원 권문세족을 제거하고, 국가기강을 재정립하기 위해 관제개혁을 실시하였다.

  • 효령대군

효령대군(1396~1486)은 태종의 둘째아들로 이름은 보(補), 자는 선숙(善叔)이다.

망원동 137번지와 207-1번지 일대, 지금의 망원정 자리는 세종 때 효령대군이 별장을 짓고 귀족들과 함께 풍경을 즐기던 교외의 명소로 희우정(喜雨亭)이라 하였다.

  • 월산대군

망원정의 주인인 월산대군(1454-1488)은 성종의 형으로 이름은 정이고, 자는 자미(子美)이며, 호는 풍월정(風月亭)이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인 세조의 총애를 받으며 궁궐에서 자랐다. 7세 때 월산군에 봉해졌고, 1468년에는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임명되었다.

합정동 457-1번지 한강 동쪽에 위치한 희우정(喜雨亭)은 효녕대군의 별장이었는데, 성종 때 월산대군의 별장이 되면서 망원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신숙주

신숙주(1417~1475)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보한재(保閑齋),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마포동에는 세조 때의 고관으로 유명한 신숙주의 별장 담담정(淡淡亭)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권 3에 의하면 신숙주는 마포 북안에 담담정을 짓고 당대의 문장가인 강희맹(姜希孟).이극감(李克堪) 등과 시를 지으며 즐겼다고 한다.

  • 이지함

이지함은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에서 기거했다. 무소유를 실천한 자유인이자 조선 3대의 기인이며 『토정비결』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학자이다.

고려 말의 대학자인 목은(牧隱) 이색의 7대손이며, 현령을 지낸 이치의 아들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 이지번에게 글을 배우다 뒤에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히며 천문, 지리, 의학, 음양에 통달하였다.

이후 마포 강변에 흙으로 움집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 이 움집을 한자로 토정(土亭)이라 하였는데 이지함의 호이자 이곳의 동명이 되었다.

  • 한백겸

한백겸(1552~1615)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명길(鳴吉)이며 호는 구암(久菴)이다.

상암동은 실학의 선구자인 한백겸이 1608년 이후부터 자리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원래 상암동은 수상리(水上里)와 휴암동(休岩洞)에 비롯되었으며 수상리는 수이촌(水伊村)이 변한 것이라 하는데, 한백겸은 「물이촌구암기(勿移村久菴記)」에서 물위치(수이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권필

본관은 안동, 자는 여장(汝章), 호는(石洲)이다.
권벽의 다섯째 아들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했으며, 술로 낙을 삼았고 시재가 뛰어났다. 벼슬을 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현석동은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 박세채

박세채는 현석동과 관련이 깊다. 이곳에 소동루(현석동 77번지 강변도로 옆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를 짓고 말년을 보낸 조선 숙종 떄의 문신 박세채의 호가 현석(玄石)이었던 데서 동명을 현석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박세채는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학자로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당쟁이 심했던 정치적 격변기를 살았던 그는 18세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2년 만에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학문에만 정진하기로 하였다.

  •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자는 자는 시백(時伯), 호는 석파(石坡)이며, 영조의 현손인 남연군(南延君)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하자 조대비는 이하응의 아들 명복을 익성군으로 봉하고 고종을 즉위시키고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에 따라 이하응도 흥선대원군으로 봉해졌다.

  • 김자점

김자점(1588~1651)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성지(成之), 호는 낙서(洛西)이다.

성산동의 옛 고을인 풀무골은 반역죄로 처형된 김자점이 이곳에 풀무간을 차려놓고 병기를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하고, 무이동(武夷洞) 뒤에 있는 「소식고개」는 김자점의 반란 계획 중 이 곳에 망보기를 세우고 서울 소식을 염탐하였다고 하여 얻어진 이름이라 한다. (주 : 한글학회, 『학국지명총람』 1, 1966, 84면)